#001

 보라색 우주를 떠다니는 것은 따분하기 이를데 없다. 차라리 주황색 우주라면 모를까, 이 동네는 우울하고 칙칙한 분위기가 가시지 않는다. 그만큼 선내 맥주의 판매량이 늘어난다는 이야기도 있긴 하지만, 그건 내 알바가 아니다. 이 곳을 지나갈 때 마다 내 심장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던 우울증이 기어올라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붉은색 우주에 닿을 무렵이면 나는 프로작(신경안정제)을 서너통 비웠다.

 내 우울증이 도진 것은 83번 엔진의 정비를 끝마칠 무렵, 눈에 튄 그리스때문에 수건을 찾아 헤매던 중이었다. 2글자짜리 욕설을 보이지 않는 신에게 퍼부으며 미간을 찡그리며 으로 허공을 짚고 있을 때, 17번 선실(로 추정되는 곳)에서 커다란 파열음이 들렸다.


"이런 씨발!"


 결국 얼룩진 티셔츠로 간신히 눈가를 닦고 PDA를 꺼냈을 때, 파열음의 원인이 7번 선실이 아니라 89번 엔진이라는걸 깨달았을 때, 그리고 엔진 속으로 회색 덩어리들이 날라 들어오는 것을 목격했을 때, 나는 한없이 우울해져서 자살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002

 정비팀의 담당자인 핵커드는 기분이 매우 언짢았다. 가뜩이나 우중충한 동네를 지나가는데 이런 식으로 문제가 터지면 팀원들의 맥주값이 3배 이상은 지출되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것보다 중요한건 이번 일이 꽤나 *정치적*이라는 것이었다. 우리 함선이 위즈니악 군제의 시체, 아니, 회색 비닐로 포장된 우주장례번데기...를 파손하게 될 줄은 그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근거리 탐색망에도 잡히지 않는 작은 물체이긴 하지만, 보라색 우주를 대표하는 몽골리아누트의 새로운 군제가 이번 일을 트집잡아 또다시 무역 통제를 시작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핵커드의 머리속에는 몽고트(몽골리아누트)산 담배를 더이상 필 수 없겠다는 슬픈 사실만이 가득 찼지만, 적어도 함실회의 중에는 그런 내색을 할 수 없으니 파손 보고서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보고하십시오."

"어...음... 몽고트의 군제, 고 위즈니악의 장례체가 우주 표준시 98710에 89번 엔진으로 들어왔습니다. 엔진에서 발생한 3000도의 고열로 인해 장례체에 들어있던 많은 고전 화기류가 폭발하여 89번 엔진의 하단부에 32%의 파손을 일으켰으며..."

"사체의 상태는?"

"다 녹아버렸습니다. 안에서 폭발할 줄은 아무도 몰랐습..."


 함선 정보보안팀장의 얼굴이 하얗게 굳는 것과 동시에, 함장의 얼굴이 바닥을 향했다. 함선 통신팀장은 입을 열고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희미한 신음 소리와 함께 입을 닫아버렸다.


 5분간의 정적이 효과가 있었는지, 서서히 함장의 고개가 올라오고 있었으나, 그의 표정은 참담했다.


#003

 오늘만큼은 맥주를 마셔도 개운하지 않았다. 사고 현장 근처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긴급 통제요원으로 착출되었을 뿐 만 아니라, 터무니 없는 임무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시체를 다시 만들라니? 이런 젠장할...


 기술학교를 다닐 때, 함선 제작 엔지니어셨던 아버지의 우주 장례식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회색 보호 시트에 쌓인 아버지의 장례체가 슉 하는 소리와 함께 우주 공간으로 날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복잡 미묘한 감정을 느꼈었는데, 방금 그게 내 고질병인 우울증 시작이었다는걸 깨달았다.


 어두컴컴한 바닥에는 회색 시트가 깔려있고, 소고기처럼 보이는 붉은색 덩어리와 아마도 칼슘으로 만들어졌을 뼈대가 있었다. 그 옆에는 1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벨기에 맥주병이 6병 놓여있었다.


 나는 긴 한숨을 쉬고, 미간의 주름을 펴기 위해 엄지손가락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아무런 소용은 없었지만.


#004

 함장의 머리속에는 과거 10년간의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가고 있었다. 문득 붉은색 우주의 새로운 전통, 우주 장례식이 국가적으로 시행된 10년 전의 그 날이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함선장으로 승격되어 오색 찬란한 종이조각과 샴페인 거품을 뒤집어쓰던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녹색의 군장을 입은 선대장과의 악수, 검은 색의 제복을 입은 수백명의 함선 승무원들의 함성, 그리고 나의 첫 함선, 상아색의 베아트리체...
 
 그리고 뒤이어 행복한 추억들이 회색 비닐에 쌓이고, 함선 좌측의 엔진에 쳐박혔다.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위즈니악 군제의 웃음소리가 폭발음과 섞이며 머리속에서 울려퍼졌다.

<계속>